공무원 시험의 역사는 세계 각지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나,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부정행위가 횡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중국이 6세기, 조선은 10세기에 과거시험을 도입하고, 서구권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 도입된 공무원 선발 시스템의 복잡한 역사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 합격자와 그 가족이 사회 지배층을 이루며, 단 33명의 대과 합격자와 총 261명의 문과 합격자를 선발했다. 하지만, 약 6만 3천명의 응시생이 지원했으며, 이로 인해 2천대 1의 경쟁률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경쟁률로 인해 많은 응시생들이 부정행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이르러, 과거 시험의 첫 관문인 초시를 패스하기 위한 부정행위가 횡행하기 시작했다. 시험지를 베끼기, 답안지 바꿔치기, 시험관 매수, 합격증 구매 등 다양한 방법의 부정행위가 있었으며, 이는 시험관의 자질 저하와 연결되기도 했다.
부정행위의 심화로 전문 부정행위업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좋은 시험장 자리를 확보하고, 대신 문제를 푸는 전문가인 ‘거벽’과 이를 글로 옮기는 ‘사수’ 등 부정행위 팀을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차술’은 주로 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정조 시절에는 4대 거벽이 유명해져서 평문을 받고 전방으로 쫓겨나기도 했으며, 부정행위로 적발되는 경우는 적었으나 완전히 없던 것은 아니었다. 숙종 25년 단종의 보기를 축하하며 개최한 시험에서도 부정행위로 인한 처벌이 있었다.
이러한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역사는 현대에도 여전히 공무원 선발 시스템의 복잡성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부정행위가 뿌리내리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과거의 역사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